원전 수출 협약의 이면 외교력과 기술 자립의 갈림길

최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미국 웨스팅하우스(WEC) 간 체결된 원전 수출 협약이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협약은 원전 1기 수출에 대해 한수원이 2400억원의 기술료를 WEC에 지급하고, 9000억원 규모의 기자재를 의무 구매해야 하는 조건을 포함하고 있다. 더 나아가, 수출 시장이 제한받고 개발 중인 소형모듈원전의 경우 WEC의 검증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UAE 수출 사례와 비교했을 때 훨씬 불리한 조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기술 자립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WEC의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한국의 대미 외교력과 국제 원자력 질서의 구조적 한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비판은 WEC가 지식재산권 문제를 제기했다는 전제로부터 시작된다. 지식재산권의 대표적인 사례로 특허가 있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20년간 보호된다. 그러나 1998년 WEC로부터 이전받은 기술은 이미 보호 기간이 종료된 상태다. 따라서 WEC가 주장하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중재 소송을 제기한 것은 한수원이었다. 실제로 WEC가 제기한 소송은 ‘미국 수출통제법 위반’과 관련된 것으로, 한수원이 미 정부의 동의 없이 체코에 원전을 수출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이 사건에서 미국 법원은 WEC의 소송을 기각했지만, 미 정부는 WEC를 통한 수출 신청만을 허가함으로써 사실상 WEC가 수출 통제권을 행사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체코로의 원전 수출을 위해 WEC와의 협의가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원자력 수출은 군사적 전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합의된 수출 통제를 준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기술을 이전받은 국가는 제3국에 수출할 때 원전 전수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한국은 해외 기술을 도입하여 자체 모델을 개발해왔으므로 기술 자립을 이뤘다고 평가될 수 있지만, 여전히 수출을 위해서는 기술 전수국의 동의가 필요한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한수원 역시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며, 한·미 원자력 협정에 명시된 ‘양국 정부는 수출 통제에 협조한다’는 조항을 믿고 입찰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세계 원전 시장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독점적 지위를 추구하는 WEC와 원자력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정부는 한국의 원전 산업을 종속적 파트너로 설정하기 위해 수출 통제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 속에서 우리의 통상 외교력이 시험대에 오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협약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비록 협약의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WEC와의 협력은 세계 최대 원전 시장인 미국으로의 진출 기회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이번 논란의 본질은 외교력과 전략적 대응력의 문제이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협상의 결과는 물론 세계 원전 산업의 판도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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